아빠 되다...
눈 떨어지던 날.
정말 큼지막하게.
야속하리만치 나쁜 일, 슬픈 일, 서러운 일 다 새하얗게 물들여 버리며.
호랑이 발톱처럼 내리던 날.

우리 아가는 소리도 없이, 발자국도 남기지 않고, 소란스러운 틈에도 용케, 살포시 엄마를 찾아 왔다.
아가야... 고마워. 좋은 엄마, 아빠 되도록 노력할게.
by 청해 | 2010/01/05 11:34 | 나 결혼해요 | 트랙백 | 덧글(1)
때론 흘려 보내야지...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모든 정욕과 애욕, 또 모든 치욕과 수치, 그리고 허탈과 공허가 밀려올 때, 광장이 아닌 외진 곳에 때론 자신을 은폐해야 할 때가 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듯, 맞서 부딪치는 것도 다는 아니다. 서둘러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욕지거리를 받아치는 것도, 애둘러 그들의 비겁함을 무찌르려 애쓰는 것도 다 최선은 아닌 것이다.

당신이 하려했던 것들, 이해받지 못하면서도 해야 한다고 했던 것들, 그리고 그 서툰 방식, 모두 당신 몫이다.
술이 한 순배 돌 때마다, 조금씩 취하듯, 그들의 마음을 조금씩 취하게 하라.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라. 하지만 이제 혼자만 가지 말라.
by 청해 | 2010/01/04 10:52 | 討黃巢檄文 | 트랙백 | 덧글(1)
해고는 살인이다.

 어제부터 전화는 불이 난다.
 욕설, 전화기 너머 여기까지 들려오는 한숨소리, 술에 비틀거리면 전화를 붙들고 세상 끝낼 기세로 덤벼들며 악다구니 쳐대는 사람들. 대개는 40~50대 이상의 걸걸한 목소리들이다. 그 목소리만으로 그가 무슨 일을 해왔고 무슨 일을 겪었을지 안 봐도 훤하다.

 그렇다고 그들 다가 비정규직법 시행으로 해고 당한 이들은 또 아니다.
 그저 나라가 걱정돼서, 신문에 온통 도배해 놓은 해고 이야기에 불이 나서 그런단다.

 그 성난 얼굴에 팩트를 이야기해 봐야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다. 처음엔 다 들어주자 했다. 법은 누군가에겐 삶의 기회를 주지만 피치 못하게 누군가에겐 절망의 나락으로 빠뜨리는 것임을 겪어보지 않아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잖은 어느 CEO의 나지막한 하소연에 갑자기 머리에서 불이 났다. 어려운 기업의 사정을 모른다고? 하루라도 중소기업을 해봤냐고? 그 점잖은 목소리에서 악마를 봤다. 그 법 어디에도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말은 없다. 갑자기 월급을 강제로라도 인상해줘야 한다는 조문은 단 한 문장, 단 한 단어도 없다. 단지 기간을 이유로 사람을 마음대로 해고하지 말라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세상을 모른단다. 기업들을 힘들게 한단다. 저 목구멍 깊숙이에서 세상의 모든 욕이 다 튀어나올 뻔 했다.

 그 다음 전화부터는 '네, 선생님 알겠습니다' 소리를 도저히 못 하겠다. 이 법이 어떤 법인지 한 줄도 모르는 사람한테는 욕을 해서라도 내용을 알려주고 싶었다. 왜곡되게 알고 있는 사람한테는 그게 아니라고 입씨름도 한다. 그러나 단 한 사람도 수긍하는 이는 없다. 애초에 말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고 하기 위해서 여기까지 전화가 왔을 터이다...  

 정부의 방침에 의해서 공공기관들은 의무적으로 10% 인원 감축을 한다. 그리고 올해 그 시기는 요즈음이다. 눈에 훤히 보이는 속임수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해고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방식은 대통령이 사장 재직 시절 수법이었을 것이다. 언론은 십자포화를 쏴대고 전화 너머 그들은 그 돌격병이 되어 쏟아져 들어온다. 안타까울 뿐이다.

by 청해 | 2009/07/03 17:09 | 트랙백 | 덧글(0)
다시 놀아볼까?
게으른, 우둔한, 매사 불만족스러운, 눈치 없는, 허송세월, 허장성세...
 
다시 놀아볼까?
by 청해 | 2009/06/30 23:03 | The Bourne Identity | 트랙백 | 덧글(2)
亂想...

  협상은 두뇌싸움이다. 상대의 패를 읽고 상대의 수가 가는 길목에 덫을 두고 상대의 뒤를 가로 막아 진퇴양난의 형세로 몰고 가기 위해 복잡다단한 수싸움이 치열한 것, 그것이 협상의 묘미다. 
 
  2007년 이맘 때, 파견 사유를 제한하지 않고 고용의제 없이, 노동자 개인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도 차별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 한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 보호가 아닌 양산법이 될 거라는 반대로 어지러웠다. 그러나 이제는 그 법이라도 시행해보자는 한 측과 어려우니까 잠시 뒤로 미루자는 세력과의 지난한 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둘 다 이기는 싸움은 없다. 불행하게도 정치에서 둘 다 만족시키는 협상과 싸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후진적이라고? 아니다. 둘다 만족하는 아름다운 얼굴로 서로 화해하고 손 잡기 위해서는 힘의 균형이 비슷하거나 팽팽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그랬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한 쪽은 더욱 치열하고 그럴수록 더 처절하게 보이는 것이다.

  비정규직법은 약 1시간 후부터 공식적으로 시행된다. 정부와 한나라당의 '대량해고설' 각본대로 엄청난 십자포화가 쏟아질 것이다. 연일 신문과 방송에서는 해고당하는 사람들의 슬픈 얼굴에 서슴없이 카메라를 들이댈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지고도 이기는 싸움을 하고 있다. 때로는 마주보고 달리는 치킨게임에서 뒤를 돌아보지 않고 좌고우면하지 말고 앞으로 나갈 이유와 그래야하는 의무가 있다. 지금이 그때다. 상대는 지금 오른쪽에 있는 낭떠러지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정면을 마주 응시할 용기도 없다. 꿋꿋하게 앞으로 가면 된다.

곧 이긴다.

by 청해 | 2009/06/30 23:01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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